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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자료 상세정보

“With Tommy Tompkins in Korea”
“With Tommy Tompkins in Korea”
원서명
“With Tommy Tompkins in Korea”
저자
Underwood, Lillias Horton
발행년
1905
발행지
New York
발행사
Fleming H. Revell
페이지
336
자료출처
명지대학교 고서 DB
자료배경
세계김치연구소 주요과제 '김치 문화 자원화 및 산업화기술개발' 중 국내외 김치문화디지털화의 일환으로 문헌 속 김치관련 기록물을 발굴 디지털화 함
기록언어
영어
주제 및 색인어
,
제작기관
세계김치연구소
소장위치
세계김치연구소 김치움
시대 / 지역
세계사 > 20세기 / 북아메리카 > 미국
주제 구분
민속 / 문학 전반 또는 기타 /문화사
해제
호레이쇼 그랜트 언더우드 목사 가족과 그 후손들은 구한말 이후 암울했던 이 땅에 기독교 복음과 교육을 통해 한국인들에게 희망을 안겨준 위대한 선교사이자 교육자들이다. 1881년 미국 뉴브런즈윅 소재 화란 개혁 신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한 언더우드는 어릴 적부터 오지에서의 선교활동을 자신의 가장 중요한 목적으로 결정하고 한국에서의 선교활동을 자원했다. 언더우드 목사는 알렌이 세운 광혜원에서 약제사로 일하면서 의료봉사를 통해 뛰어난 선교활동을 전개했다. 그리고 1889년 3월 언더우드는 30세가 되던 해에 자신보다 8세 연상인 릴리아스 호튼양과 결혼했다. 호튼은 북장로교 선교부에서 1888년 3월 23일 한국에 파송된 이후 제중원 부인과 책임자가 되어 수많은 한국 여성 환자들을 치료하고 민비의 시의까지 겸하게 되면서 자주 궁중을 출입한 인물이다. 언더우드 부부는 결혼한 다음 해에 아들 원한경을 낳았다. 릴리아스 언더우드는 원한경을 키우면서 느낀 개인적 소감을 1905년 With Tommy Tompkins in Korea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이 책은 언더우드의 가족과 한국에 대한 깊은 사랑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언더우드 가족의 생활사를 한국인들의 탄생, 죽음, 결혼, 종교의식 등과 비교하면서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면 아들 원한경이 탄생하기 전에 이미 미국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 등이 손자 양육에 필요한 물건을 한국에 보내는 가족애를 보여주고 있다. 릴리아스는 한국인들이 특히 서양 어린이들에 대해 남다른 사랑을 보여주고 있다고 언급하고, 한국 어린이와 서양 어린이 양육의 차이, 한옥생활의 즐거움 등을 설명하고 있다. 특히 언더우드 부부는 한옥의 정원이 4월과 5월에 특히 아름답다고 극찬하고 있다. 이 책에는 한국인들의 혼례와 장례 문화, 김치를 좋아하는 한국인들의 식생활, 특히 한국인들의 조혼풍습, 송도 주변에서의 선교활동, 덕수궁 화재사건, 서울과 제물포를 오가는 기차, 언더우드 부부가 아들과 함께 고종과 민비를 알현하는 모습, 미국식 크리스마스를 처음 접하는 고종에 대한 인간적인 묘사가 잘 드러나 있다. 또한 구한말 당시에 열악한 위생환경으로 만연했던 콜레라 등 각종 전염병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잘 보여주고 있다.
소장사항
명지대학교도서관 한국관련 서양고서 DB 검색시스템
원문 URL
참고정보
표기
Kimchi
원문내용
These people loved to work in the garden and everything the Captain looked at grew. Be-sides fruit trees, they had all sorts of small fruits and vegetables, for such things cannot be bought in Korea. The native vegetables were as poor as their fruit, perhaps because there are no instructed and educated farmers. The natives live mainly on rice, the very poor use millet, and far up in the mountains where rice will not grow, potatoes are cultivated. Their kimchi or sauer kraut is made of cabbages which are much coarser and tougher than ours, and busy indeed are the women in the season when it is " put down " for the whole year. First of all the red peppers which are indispensable dispensable are picked, and the roofs are brilliant with patches of them drying in the sun, for two or three weeks at that season. They seem to have gathered all the fire of the fierce July sun and to have stored it up against the cold time coming, as who should say " Don't fear winter winds, frost and snow, I will put July in you up to the nineties." Then too there is a great washing of cabbages and turnips; every little stream near the villages is crowded with men and women and children, washing hundreds and thousands of these vegetables. The rosy country women carrying great round baskets of cabbages on their heads, with the fresh green leaves drooping all round their faces, look charmingly picturesque. After the ingredients are all cut up, they are packed with much salt in great earthen jars, where they remain out of doors all the year. No Korean considers a meal complete without kimchi and various are the recipes for its making, though the main articles are everywhere the same, cabbage, turnip peppers and salt. Their vegetables are limited mainly to these already mentioned, with a coarse kind of lettuce, onions, garlic, black beans, a very little coarse corn, and in some sections tomatoes, celery and a kind of wild asparagus. There is also a variety of squash which is not unlike our pumpkins, and which Tompkins' Amonni found made a fairly good basis for eggs, milk, spices, etc., resulting in proper or almost proper American pumpkin pies. Comparatively little wheat and barley is raised, in the country one often gets buckwheat as the only flour obtainable. There is not a flour mill in Korea, except one run by a foreigner in Chemulpo.
국문해석
이들은 과수원 일을 좋아했으며 우두머리가 모든 것을 돌보았다. 과실수 이외에도 한국에서 구입할 수 없는 온갖 작은 과일과 채소를 키우고 있었다. 토종 채소는 이들 과일만큼이나 질이 좋지 않았는데, 이는 교육을 받은 농부가 없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들은 수수를 사용하지 않고 쌀을 주식으로 하며 벼가 자라지 못하는 고산지대에 살고 있지만 감자는 재배하고 있다. 이들 김치 또는 사우어크라우트(독일식 김치)는 우리보다 더 거칠고 뻑뻑한 배추로 만든다. 그리고 한 해를 위해 “내려놓는” 시절엔 이곳 여자들은 무척이나 바쁘다. 우선, 고추를 딴 다음에 지붕에 올려 태양 아래에서 2-3주 동안 건조시킨다. “겨울바람과 서리 그리고 눈을 무서워마라. 내가 네 안에 7월을 90세까지 갈무리해 두리라”고 누군가 말했듯이, 이 광경은 마치 작렬하는 7월 태양의 불을 모아서 돌아오는 동절기에 대비하여 보관하는 듯하다. 그런 다음 마을 곳곳에 있는 개천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수 백 또는 수 천 포기의 배추며 무를 씻느라 야단법석이다. 커다란 배추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가는 동네 아낙네들의 얼굴로 흘러내린 채소 잎이 온통 앞을 가린 모습은 너무나 사랑스러운 광경이다. 모든 부재료를 토막 낸 다음 커다란 항아리에 소금과 함께 갈무리되어 그해 내내 밖에 저장된다. 한국 사람들에게 김치 없는 식탁은 생각할 수 없다. 주재료인 배추와 무, 고춧가루와 소금은 어디나 같지만 배추를 담그는 방법은 다양하다. 이외에 상추, 양파, 마늘, 검은콩, 아주 작은 옥수수, 그리고 일부 지역에서는 토마토, 샐러리와 야생 아스파라거스를 제한적으로 사용한다. 또 Tompkin의 어머니가 발견한 우리 호박과 다르지 않은 다양한 호박이 있는데, 미국식 호박 파이에 필요한 달걀, 우유, 양념 등에 매우 훌륭한 기본재료이다. 밀과 보리는 상대적으로 거의 재배되지 않지만, 가루로 만들 수 있는 메밀은 이 나라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다. 외국인이 제물포에서 운영하는 한 곳을 제외하고 한국에는 제분소가 없다.
수록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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